“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고 살아. 누군가는 들어 주겠지.”
주종은 가리지 않지만,
사람은 가리고 싶어지는 하루……
당신의 손에 들린 잔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소주, 맥주, 탁주, 와인, 위스키까지
서로 다른 주종만큼이나 다채로운 인생 이야기
“아, 인생 참 쓰다.”
술을 마시다 보면 술이 유독 달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인생이 참 쓴 날이다.
청춘, 주거, 인공지능 등 다양한 테마로 독자들을 만나 온 앤드 앤솔러지 시리즈가 이번엔 ‘술과 인생’을 테마로 한 단편집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으로 다시 찾아왔다.
소주, 맥주, 탁주, 와인, 위스키까지. 서로 다른 주종만큼이나 다채로운 인생 이야기를 담은 이번 앤솔러지는 쓰기만 한 인생에 지친 독자들에게 달콤 쌉싸름한 위로를 건넨다.
김혜나의 「달콤 쌉싸름한 탁주」 속 주인공은 졸업 후 10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적성에 맞는 일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는다. 새로운 취미를 만들고 싶어 들어간 막걸리 빚기 원데이 클래스에서 ‘이 일을 평생 하겠구나’라는 막연한 예감을 느낀 주인공은 이직의 기회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양조업계에 뛰어드는데…….
박주영의 「위스키 한 잔의 시간」은 J BAR라는 비밀스런 공간을 그리고 있다. 치열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작가가 그려내는 이 매력적인 공간에서 위스키 한 잔의 시간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서진의 「맥주의 요정」에서는 제주산 ‘신풍아이피에이’를 위한 고군분투기가 그려진다. 실업수당이 끊길 날은 멀지 않았고 저금해 둔 돈만 까먹고 있는 제주에서의 삶이지만, 깜깜한 밤하늘엔 별빛이 쏟아지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있으니 아직 살 만하다. 과연 맥주의 요정은 맥주도, 인생도 깊은 맛을 내게 해 달라는 주인공의 소원을 들어줬을까?
정진영의 「징검다리」 속 주인공은 당근마켓에서 아이폰 13 미니 목업폰을 20만 원에 ‘쿨거래’ 해 버린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8개월 동안 아무도 낚이지 않은 판매글에 낚인 주인공의 속사정과 시나위 님과 낭만고양이 님이 삽겹살을 앞에 두고 눈물의 소주잔을 부딪치게 된 사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최유안의 「얼리지」에서는 와인을 둘러싼 분연한 권력의 세계가 펼쳐진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별장 지하. 비밀스럽고 거대한 와인 창고 안에서 진행되는 와인 시음회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 살짝 들여다보자.
+ 펼쳐보기불어난 쌀로부터 소주가 되어 가는 과정이 일종의 연금술 같아 보였다. 나도 그렇게 불어나고, 쪼개어지고, 발효되고, 타오르고 나면 언젠가 내 안에 진짜 이야기가 한 방울씩 흘러나올까?
_김혜나, 「달콤 쌈싸름한 탁주」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거 마시고 잊어버려. 영원히 잊을 수는 없어도 지금은 잊어. 어제도 내일도 생각하지 말고 오늘만 생각해. 오늘 잘 살았어, 그러면 마셔도 되는 거야.
_박주영, 「위스키 한 잔의 시간」
“자꾸 들락날락거리면 눈치가 보여서 맥주가 제대로 익지를 못하잖아. 걱정 마. 내가 요정을 불러 놨어. 우리가 자고 있을 때에도 발효가 잘될 수 있도록 날갯짓을 하면서 온도와 습도를 맞춰 주고 파리도 쫓아 줄 거라고.”
_서진, 「맥주의 요정」
저는 40대 초반 남자입니다. 구양동에서 함께 한잔하며 말동무할 40대 남자분을 찾습니다.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서로 질척거리기 없이 오늘 딱 하루만 인연 맺고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하시죠. 제가 쏘겠습니다. 저녁에 시간 되시는 분은 채팅으로 메시지 남겨 주세요.
_정진영, 「징검다리」
이런 와중에도 돈은 실체를 갖고 흔든다. 예술도 문화도 세상도 쥐고 흔들어 댄다. 임 교수의 와인 창고도 그랬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와인 병들이 떼로 묻힌 저 창고가 그의 유일한 자랑이고 예술이며 문화인데, 씨발, 돈 있는 집 자식이 돈 좀 쓴다고 해서, 그게 뭐 대수라고.
_최유안, 「얼리지」